사회사상과 사회복지정책(2)
2.케인스주의와 국가개입주의
아담 스미스가 중상주의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비판했다면, 케인스는 자유방임주의를 비판했다.
케인스 경제이론은 1929년에 시작된 세계적인 대공항 이후 20세기 내내 경제학자는 물론 정치인과 공공정책 수립자의 사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자본주의 경제는 국가가 적절히 개입해야만 그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그의 경제관념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복지국가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 되었음은 물론 정치적 지지를 끌어내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케인스는 실업, 저축, 이자 불평등에 대해 고전파 경제학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고전파에 의하면, 실업은 기업주와 노동자 사이의 임금계약에 좌우된다. 다시 말해서 개별 노동자가 요구하는 임금 수준이 높으면, 고용주는 고용을 거부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가 많으면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케인스는 이를 부정하고, 실업은 유효수요(투자+소비)(유효수요의 개념은 케인스 이론의 키워드에 해당한다)의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총고용은 총수요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고용이 증가하면, 소득이 증가한다.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행위, 즉 유효수요가 증가한다. (고용증가 → 소득증가 → 유효수요 증가) 반대로 유효수요가 감사하면, 소득이 감소하고(유효수요의 감소는 경기불황을 가져온다) 소득이 감소하면, 실업이 증가하는 것이다. (유효수요 감소 → 경기불황 → 소득 감소 → 실업 증가)
그런데 실질소득의 증가는 소비를 촉진하지만 소비의 증가율은 항상 소득의 증가율보다 낮다는 데 문제가 있다. 소득 일부가 저축의 형태로 '퇴장'되기때문이다. 고전파는 저축의 증가는 이자율을 인하하고, 이자율의 인하는 투자를 촉진 시킨다고 보았다. 그러나 케인스는 고전파가 말한 저축이란 '퇴장'이며 퇴장은 투자를 증가시키는 게 아니라 실업을 증가시킨다고 보았다. (저축 증가 → 투자 감소 → 고용 감소)
[그림표] 케이슨의 경제이론 : 고용, 유효수요, 소득 경기 투자의 관계
고용 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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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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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수요 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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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수요 감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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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불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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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감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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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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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 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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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감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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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감소 |
그리고 그는 개인들이 채권이나 주식보다는 화폐나 은행예금 등 현금을 선호하는 이른바 유동성 선호가 투자 감소와 대량 실업의 증대와 같은 반사회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것은 1929년 대공황으로 증명되었다. 따라서 일정한 고용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간격을 줄이기 위한 국가정책, 즉 실질적인 투자 증가를 위한 정책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완전한 부정이다.
또한 부와 소득의 불평등도 부정적으로 보았다. 불평등은 도덕적으로서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국가에 큰 해악이 되는 문제였다. 즉, 이런 불평등은 부유층이 소비하고 남은 부분인 저축을 증가시키고, 저축의 증가는 소비의 감소를 소비의 감소는 투자의 감소를 투자의 감소는 실업의 증가를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자본주의는 현명한게 관리된다면 가장 능률적인 체제임에 틀림없었지만, 부와 소득의 거대한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관리되어야만 할 존재였다. 이렇게 소득의 불평등이 새로운 부의 창출의 장애물이라고 본 케인스의 생각은 부의 추적이 소득의 잉여에서 나오는 저축에 의존한다는 고전파의 관념과 달랐다.
그런데 케인스가 실업과 불평등을 반대한 이유가 경제적인 데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주저 『일반이론』의 결론에서 밝혔듯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실업과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해소하여 자본주의를 유지해야 할 매우 급한 시기에 "자본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훌륭한 조치들을 볼셰비즘으로 간주하고 있는" 완고한 지도자들을 계몽시키기 위함에 있었다는 것이다.
여하튼 케인스 이전의 사회민주주의적 평등주의자들은 소득분배의 평등화가 정치적 · 사회적으로 옭은 일이기 하지만 그것이 저축의 감소와 경제발전의 둔화를 가져온다는 자유주의적 논리에 대한 대응논리를 결여하고 있었는데, 케인스에 의해 저축을 증대가 오히려 경제발전의 정체와 실업을 야기한다는 점이 밝혀짐으로써 자신들의 주장에 상당한 힘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케인스 이론을 사회 민주주의자들이 복지국가의 이론적 무기로 적절히 활용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일국 보수주의를 신봉한 보수당의 주류들까지 케인스주위를 수용하여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국가 사회복지활동의 확대를 정당화했던 것이다.
케인스는 또 인플레와 디플레 모두를 반대했지만 정당한 인플레는 비교적 해약이 덜하다고 생각했다. 인플레, 즉 화폐가치의 하락은 과거에 축적된 부(은행예금 등)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항상 새로운 투자를 자극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디플레, 즉 화폐가치를 하락시키고 항상 새로운 투자를 자극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디플레, 즉 화폐가치의 상승은 금리 생활자에게만 유리할 뿐 사회 전체의 복지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케인스가 제시한 고용증진을 위한 국가정책은 사회의 소비성향을 증대시키기 위한 누진과세(소득재분배정책), 민간투자의 부족을 채우기 위한 공공투자(인플레를 다소 유발해도 좋다) 화폐공급을 통제하고 이자율을 인하하기 위한 화페당국등이었다. 이 중 사회복지정책과 직접 관련된 것이 소득재분배정책이다. 자본주의에서 누진과세와 함께 소득재분배를 기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제도가 사회보장이다. 사회보장은 유효수요를 증대시키고, 또 그 수준을 유지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국가정책이다. 바로 여기에 복지국가를 경제학적으로 정당화하는 근거가 있다. 이로써 보수적인 사람들도 사회복지정책을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를 강화시키는 제도로 수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케인스 사상을 국가개입주의 라고도 한다. 국가개입주의란 자유주의와 같이 자본주의의 기본가치의 자유, 개인주의 경쟁적 사기업에 대한 신념을 신봉하되, 자본주의의 자기 규제적이지 못한 결함을 지시하고 이의 해결을 위해 일정한 수준에서의 국가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실용주의적 읿장을 말한다. 이를 소극적 집합주위라고도 하는데 베버리지와 갤브레이스 등이 거기에 속한다. 이들에 있어 자본주의는 최선의 경제체제임이 틀림없지만 공정하고도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규제와 통제가 필요하며, 자본주의 결함이 심각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아니고 수정될 수 있다. 체제 선택의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경우 따라 공공독점이 필요하기도 하고, 자유로운 민간기업이 필요하기도 하다는 실용주의는 사랑이 그것이다.
소극적 집합 주의자들의 국가관의 핵심은 국가의 이성적인 활동을 신뢰한다는 데 있다. 이들은 경제사회체계가 간섭을 전혀 받지 않을 떄 가장 잘 돌아가는 신비롭고 자율적인 원리에 지배된다는 관념(자유방임주의)을 배격하였으며, 이성적인 사고와 계획에 의해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었다. 국가는 공공이익에 관심을 두어 당면한 문제에 대해 독자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는 조직체이다
한편 이들은 복지를 위한 국가의 역할에 대해 실용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국가의 복지 역할이란 제거할 수 있는 병폐를 제거하는 것이고, 문제에 대해 조장 적이기보다는 반응 적이며 문제 중심적이다. 국가는 사기업에 의해 적절히 공급되지 않는 것을 공급하고, 저소득층이나 소득 상실로 인한 결핍을 제거하며, 풍요로 인해 생겨난 욕구(예 : 환경문제)에 대해 공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가의 사회복지정책이 있어서 특히 중요한 것은 최저수준의 보장이다. 베버리지는 국가가 최저수준 이상을 제공하는 것을 절대 정부의 책무가 아니며, 개인이 돈을 자신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데 사용하는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았다. 최저수준의 보자응ㄹ위한 베버리지의 무기는 사회보험이었다. 그에 있어서 사회보험은 자산조사 없이 급여를 제공할 수 있고 수혜자(피보험자)에게 일정한 부담을 지움으로써 검약 정신을 장려하며, 일정한 책임의식을 조장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베버리지는 사회보험과 민간 보험의 관계를 보완적이라고 보았다. 즉 사회보험은 최저수준을 보장하고, 민간보험은 개인의 능력과 자유에 따라 생존선 이상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갤브레이스의 복지에 대한 의견은 철저히 실용적이다. 그에 있어 국가개입은 원칙적인 문제가 아니라 다른 형태의 대책이 실패하여 국가의 정책이 불가피한 경우에 한한다. 예컨대, 재취업한 어머니를 위한 아동복지정책, 풍요가 가져다준 건강상의 위험(비만, 간 경화, 알코올 피해, 폐암, 심장병 등)에 대한 대책 등이 그것이다. 그는 자본주의 국가가 사회경제생활에 간여할 때 대체로 독점대기업 등 강자를 위한 정책에는(예 : 군산복합체에 대한 지원)에는 우호적이지만 약자를 위한 사회복지정책에는 매우 인색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대공항 이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케인스주의와 국가개입주의는 1973년과 1979년의 오일쇼크로 인한 스태플레이션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원래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호황기에는 물가 상승하고, 불황기에는 물가 하락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1970년대의 오일쇼크는 부활과 인플레를 동시에 발생시켰다. 이는 인플레가 경제를 활성하시키고, 경제 활성화는 실업률을 낮춘다는 케인스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거이었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적인 통화주의 경제학이 힘을 얻게 되었다. 통화주의 이론에 의하면, 실업률이 높은 상황에서 인플레가 발생하면, 장래의 예상 인플레도 뒤따라 상승하게 되는데. 재정 · 금융정책에 의한 긴축으로 이것을 억제하여 현재의 인플레를 떨어뜨려도 예상 인플레가 그 뒤를 따르기 때문에 안정되기까지는 높은 실업률과 높은 인플레가 공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을 위해서는 케인스주의 경제사회정책을 포기하고, 화폐 공급을 억제하여 경제의 자율성ㅇ르 회복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보았다. 대처의 등장과 함께 케인스주의는 통합주의로 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