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정책론

사회보장 (2)

헬페인 2020. 1. 29. 20:57



3. 사회보장의 목적과 신자유주의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사회보장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보장의 전통적인 목적과는 다른 새로운 목적, 즉 사회보장의 생산적 측면과 근로유인의 강화를 지향하는데 더 큰 비중이 주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영국 요크 대학 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인의 지적이 설득력이 있는데 그는 먼저 사회보장의 전통적인 목적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꼽았다.


  첫째, 빈민구제이다. 베버리지 보고서가 5대 악 중의 하나로 지목한 결핍에 대한 대챡으로서의 사회보장이 바로 이런 목적을 추구한다. 공공부조(또는 그 뿌리인 빈민법)가 가장 대표적이다.


  둘째, 욕구충족이다. 노인, 아동, 장애인 등 사회적 요구가 큰 집단을 위한 사회적 대책(주로 공공부조와 사회복지서비스)으로서의 사회보장을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사회보장 수급자들의 사회적 권리가 신장되면서 많이 사용되었다.


  셋째, 소득유지와 소득 보전이다. 연금과 건강보험이 여가에 해당되는데, 일을 하여 소득이 있을 때 사회보험에 가입 보험료를 내고, 노후나 질병으로 소득이 중단 또는 감소되었을 때 사회보험 급여를 받음으로써 소득을 유지한다.


  넷째, 보상이다. 공장주를 위해 일하다가 산업재해를 당했을 때 노동력 상실에 비례하여 보상을 받는 노동자보상법이나 산재보험이 여기에 해당된다.


  다섯째, 재분재이다. 공공부조는 소득계층 간 재분배(수직적 재분배)를, 가족수당은 평적 재분배(소가족에서 대가족으로)를, 연금은 세대 간 재분배(청년세대에서 노인세대로)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신자유주의의 강력한 영향으로 이상과 같은 전통적인 목적과 이념적으로 차이가 뚜렷한 새로운 프로젝트가 강조되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 수동적 목적 대신 적극적 목적을 강조한다. 베버리지고 보고서는 결핍 상태에 빠진 사람을 부조건 보호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수동적이었다. 그러나 대처리즘이 등장한 이후 사회보장의 수동적 성격은 부정되고 적극적 복지, 즉 사회보장의 생산적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둘째, 근로유인을 강조한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스태그플레이션과 함께 고실업이 장기화가 되고 사회보장의 생계 보장적 기능보다는 일하도록 만드는 기능이 강조되었는데, 이는 기존의 사회보장에 근로유인을 약화시키는 측면, 즉 빈곤함정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하여 근로 조건부 복지가 강조되었다.


  셋째, 행동의 변화에 초점을 둔다. 사회보장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시민의 행동은 억제하고, 반대로 바람직한 행동은 고무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홀로 사는 노인이나 젊은 독신자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사는 노인과 기혼 부부의 사회보장 급여를 유리하게 만듦으로써 가족과의 동거와 결혼의 장려하는 것이다. 또한 실업보험 급여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유리하게 만드는 것도 같은 논리이다.


  이상과 같이 사회보장의 생계보장 기능보다 생산적 측면과 근로유인 강화 기능이 더 강조되는 것은 이미 언급한 대로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때문인데, 신자유주의자들은 빈곤을 경제적 역기능(시장의 실패)의 결과로 보는 대신 개인적 노력 부족의 결과로 간주하고, 풍요 속에 상대적 빈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부정하며, 베버리지 천명한 사회보장을 통한 빈곤의 예방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4. 사회보장과 사회안정망



  최근에는 IMF와 World Bank를 중심으로 사회보장 대신에 사회안전망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IMF와 World Bank는 원활한 시장경제의 작동과 개발도상국 및 후진국에 대한 경제적 원조를 목적으로 하는 대표적인 국제금융기구인데, 1970년대 후반부터 재정지원을 받은 개발도상국가와 구 사회주의 국가의 구조정 프로그램(재정지원의 조건으로 제시), 즉 국가재정지출의 축소, 자본시장의 개방, 노동시장의 유연화, 국영기업의 민영화 등으로 실업자의 양산과 빈곤의 심화 등 부정적인 결과(이른바 '빈곤의 세계화')가 나타나자 그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양대 국제금융기구에 포진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기존의 사회보장이란 용어 대신 사회안전망이라는 용어를 선호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안전망을 구조조정을 위한 경제개혁조치(신자유주의적 재편)가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미치는 역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주로 단기적 사회복지정책)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들은 사회안전망의 가장 큰 목적이 빈곤의 예방과 제거에 있다고 본다. 즉 소득이 중단되거나 예외적인 지출의 발생으로 빈곤에 빠질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빈곤에 빠지지 않도록 방지하고, 이미 빈곤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최저한의 생계보장은 해줌으로써 빈곤에서 탈피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장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회안전망을 구조정에 따른 부작용을 보완하는 단기적인 사회복지정책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사회안전망에는 특정 취약집단에 대한 생계보조수당. 민영화로 실업자가 된 공공부문 노동자를 위한 해고수당, 근로 창출을 위한 공공근로사업, 극빈층을 보호하기 위한 최저한의 사회보장(이는 기존의 관대한 사회보장을 선택주의적 재정비하는 것을 의미한다)이 포함된다.


  사실 이러한 대책들은 대부분 사회보장제도에 포함된다. 그런데도 굳이 이들이 사회보장 대신 사회안전망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서구 복지국가의 사회보장이 고비용 ― 비효율 ― 관료주의적이며, 정부의 과도한 재정지출이 시장경제를 해치고, 삶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약화시키는 주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 사회안전망이 구조조정이 보충장치라는 사실은 우리나라 1997년의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1998년 IMF 구제금융의 대상이 되었을 때 잘 확인되었다. 당시 World Bank는 우리 정부에 구조조정차관 20억 달러를 지원하면서 금융개혁, 기업 구조조정, 사회안전망 등 세 분야의 구조 개혁과제들을 적시한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했는데. 이 중 사회안전망 부분은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노동시장에 방출되는 실업계층과 노동능력 빈민을 주된 대상으로 삼아 자활보호의 강화, 보건의료 부문과 사회보장연금에서의 효율성에 투명성의 제고, 사회보장연금의 부분적인 민영화(연기금의 투자를 민간투자회사에 위탁)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이들 신자유주의 성향의 국제금융기구가 지향하는 구조조정을 뒷받침하는 한시적인 사회안전망의 확충,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개인적 형평성과 효율성의 강화 및 민영화를 충실히 반영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