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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정책의 역사(7)

사회복지정책론

by 헬페인 2019. 12. 1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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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지국가의 등장



  복지국가란 용어는 영국의 컨터베리 대주교 윌리엄 템플이 자신의 저서 『시민과 성직자』에서 가장 먼저 사용하였다고 알려졌다. 즉, 템플 대주교가 나치 독일을 전쟁국가 또는 무력국가로, 영국을 복지국가로 대비시켜 규정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전쟁국가는 시민과 인접 국가를 억압하는 폭군적인 국가인 데 비해, 복지국가는, 시민의 복지를 위해 봉사하고 이웃 국가를 존중하는 하나의 공동체로 대비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민의 복지를 향상시키려는 자비로운 국가 권력이 자칫하면 전체주의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가급적 많은 권한과 책임을 비정부기구에 위임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용어로서의 복지국가는 1930년대 독일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즉, 당시 독일의 일부 인텔라들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Wohlfahrstaat 라고 했는데, 이는 무능한 바이마르 국가 정치 경제적 생존능력을 상실할 정도로 너무 많은 책임을 떠안은 것을 비아냥거리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다가 1940년대 후반부터, 복지국가는 노동당 정부하에서 크게 확대된 국가 권력을 자칭하는 것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그때부터 국제으로도 통용되고 또 학계와 정계의 보편적인 용어가 되었다. 처음 영국의 학자들은 복지국가란 단어를 사용하길 꺼렸다. 그 이유는 전술한 대로 1930년대 독일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돼 전례가 있고, 또 영국이 미국의 원조를 받는 입장에 처해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한편 복지국가는 1934년 옥스퍼드대 교수인 Alfred Zimmern의 신조였다는 말도 있다. 1937년에는 경제학자인 George Schuter 경도 사용했다고 한다. 그 의미는 이 용어를 대중화시킨 윌리엄 템플 대주교가 사용한 것과 같았는데, 이들은 모두 복지국가를 유럽의 전체주의 국가인 무력국가에 대비시켰다. 그것은 기독교적 의미가 강했다. 마르크스적이기보다는 감리교적이었던 것이다.


  복지국가는 제2차 세계 대전은 직후 영국에서 노도당 정부의 집권과 함께 출현하였다. 당시 총선은 전시 거국 내각의 성립 이후 20년 만에 이루어지는 선거였는데, 이 선거에 대해 전 세계의 언론은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의 세계적인 영웅인 윈스턴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의 압승을 예상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놀랍게도 애틀리의 노동당의 승리였다. 애틀리 노동당 정부는 1951년 총선에서 패해 보수당에 정권을 내줄 때까지 베버리지 보고서를 바탕으로 6년 동안 복지국가의 골격을 완성하게 된다. 그러면 여기서 노동당이 집권하게 되는 관정을 간략히 살펴보자.


  1944년 아직 유럽에서 전쟁이 한창일 때 노동당은 종전되면 즉각적으로 연정에서 물러나 독립된 당으로서 총선에 임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1945년 5월 정쟁 막바지에 연정을 지속할 여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당의 반 토리 정서는 점차 강화되고 있었다. 에틀리, 베빈 등 노동당 지도부는 전후 총선에서 국가적 영웅인 처칠을 이길 수 없다고 보아 종전 후 국가재건 기간까지 연립정부를 지속시킬 생각이었다. 그 무렵 처칠이 이런 제안을 했을 때 애틀리와 베빈은 수용하려 했다. 그러나 당 집행위원회가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보수당은 전쟁 영웅으로서의 처칠의 명성을 선거에 활용하기 위해 조기 총선을 추진했고 연정은 끝났다. 당 지도부의 불안 속에서 여름부터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6월 총선의 결과는 예상 밖에 대승리였다. 총선에서 노동당은 393개의 의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며 집권에 성공하였다. 보수당은 213석에 불과했으며, 기타 정당이 34석이었다. 득표수로는 노동당이 47.8%, 보수당이 39.8%를 기록하였다. 이런 압승으로 노동당은 창당 후 처음으로 단독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영국의 유권자들은 종전 후 일종의 뉴딜을 원했다. 그것이 노동당의 복지정책이었다.


  그런데 이상과 같이 노동당이 예상 밖의 대승리를 거두어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계급의 변화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애틀리의 복지국가는 노동자계급의 힘의 증대,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 간의 복지동맹, 자본의 복지국가에 대한 암묵적 수락의 결과라는 것인데, 이런 중대한 변화는 바로 전쟁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선 노동자계급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다. 전전의 대공황기에 엄청난 실업과 실질임금의 하락을 경험한 노조는 급진적 요구 대신 적절한 국유화(사적 소유 하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줄 수 없는 산업에 한해 국유화하는 것), 완전고용, 복지정책의 확대 등 자본주의 틀 안에서 실현 가능한 것을 요구하기로 입장을 바꾸었다. 노동당 역시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실현 불가능한 강령 대신 재분배를 통해 자본주의 부정적 결과들을 완화하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 이는 곧 노조와 노동당이 복지국가라는 매개를 통해 자본과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이 지적한 대로 전후의 노동당 정책은 사회주의적이었지 사회주의는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전쟁은 중간계급의 태도도 변화시켰다. 전통적으로 중간계급은 노동시장에서의 자신의 유리한 지위 떄문에 자조의 신념을 지니고 있었으며, 국가복지는 자신들의 부담으로 운영될 뿐만 아니라 그 대상자들에게 의존심을 조장한다. 하여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전쟁은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위험을 안겨 주었고, 전시의 국가 통제에 익숙해졌으며, 보편적인 국가복지가 자신들에게도 유리한 점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어 복지국가를 수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곧 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복지동맹이다.


  사실 중간계급이 노동당을 선택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간계급의 지지 없이 노동자 계급 유권자들만으로 노동당이 승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자유당이나 보수당 지지자들이었던 이들 중간계급은 장기간의 전시생활에 지쳐 보수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종전 후의 새로운 개인의 자유와 가족생활을 염원했다. 다시는 전쟁에 휘말리기 싫어했던 것이다. 전쟁은 끝났으니 이제 시민들에게는 전시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 전의 사회문제가 더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총선은 지난 20년간의 불행에 대한 심판이었고, 선택받은 쪽이 노동당이었던 것이다.



3) 신자유주의와 복지국가의 후퇴


  돌이켜 보면 20세기는 사회복지 확대의 시기였다. 빈민구제보다 부랑자에 대한 공안대책으로 악명 높았던 빈민법이 완전히 사라졌고, 산업재해 · 노령 · 질병 · 실업 등 사회적 위험에 공동체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만들어졌으며, 모든 국민의 사회적 욕구를 하나의 권리(복지권)로 보장한 보편주의적인 복지국가 탄생한 것이 바로 20세기였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적인 복지국가는 관료화, 비효율, 의존성 증대 등의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했고 또 경제발전의 활력을 상당 부분 소진하게 시킴으로써 1970년대 말부터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1979년과 1980년에,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영국의 대처리즘(1979년 총선에서 대처 당수가 이끈 보수당의 승리로)과 미국의 레거노믹스(1980년대 대선에서 공화당의 레이건 후보가 당선되어)가 거의 동시에 등장한 게 그 시발이었다.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친 오일 쇼크로 인해 야기된 스태그플레이션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복지국가의 이념적 · 이론적 기반이 되었던 케인스주의를 무력화시켰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스태그플레이션의 극복을 위해서는 케인스주의 경제사회정책을 포기하고, 화폐공급을 억제하여 경제의 자율성을 회복시키는 방법, 즉 통화주의 정책밖에 없다고 보았으며,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중간계급은 물론 복지국가의 가장 큰 수혜자인 동시에 지지자였던 노동자계급, 특히 고소득 · 숙련기술 노동자들마저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복지국가는 체계적으로 침식당하기 시작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신자유주의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복지, 평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과 같은 사회민주주의 가치(제 1 의 길)와 시장의 자유, 경제적 효율, 노동 인센티브 등과 같은 시장자유주의 가치(제 2 의 길)를 동시에 추구하는 '제 3 의 길' 노선이 일정 부분 지지를 얻고 있다. 영국 노동당 정부의 토니 블레어 총리와 독일 시민당 정부의 슈뢰더 총리가 추구하는 사회경제정책이 그것이다. (미국의 클린턴 정부도 제 3 의 길을 지지하였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대한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당 이념의 쇄신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며, 제 3 의 길 노성능 신자유주의 득세 속에서 좌파가 취할 수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정통적인 좌파는 제 3 의 길을 신자유주의 변종일 뿐이라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복지국가의 개념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보다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제 3 의 길에 대해서는 본서 사회사상과 사회복지정책 부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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