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제조합
사회보험은 공제조합에 기원을 두고 있다. 1880년대 독일제국이 사회입법의 일환으로 건강보험을 도입(1883년)할 때 중앙집중식 관리 기구를 새로 만드는 대신 이미 질병 급여를 제공하고 있었던 기존의 공제조합을 중심으로 질병 금고(sickness funds, 건강보험조합)를 만들었고, 영국도 1911년 국민보험의 하나 건강보험을 실시하면서 별도의 관리기구를 신설한 게 아니라 기존의 공제조합 중에 정부가 공인한 조합에 맡겼다. 프랑스 역시 1930년에 공적연금을 시행할 때 기존의 공제조합들을 일선금 고로 활용했다.
공제조합이란 조합원 상호 간의 부조와 복지를 복적으로 하는 상호부조조직인데, 조합원이 갹출한 일정의 부금을 재원으로 해서 조합원이 노령, 재해 실업, 질병, 사망 등의 사고를 당했을 경우 급여를 지급한다. (조합원 본인이 사망하는 경우에는 그 미망인과 자녀에게 지급) 오늘날과 같은 국가 주체의 사회보장제도가 전혀 없어 노동자 가족들의 생계문제는 전적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19세기 말까지 공제조합은 노동자들이나 서민들의 복지를 위한 유일하고도 유력한 사회조직이었다.
공제조합이 채택한 보장의 기술, 즉 일정한 사회적 위험들과 그런 위험에 대한 보상을 사전에 약정한 다음 실제로 그런 위험이 발생하면 약정된 급여를 하나의 권리로써 제공하며,, 이런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사전에 일정한 부금을 납부해야 하는 기술은 현대적인 사회보험의 기본 원리와 본질에서 완전히 같다.
영국에서는 17세기부터 노동자들의 자생적인 상호부조조직인 우애조합이 발전했다. 우애조합은 점차 초기 형태의 노동조합으로 성장했다. 18세기 들어 빈곤과 저임금이 반영되면서 노조의 호전성도 크게 증대되었다. 1789년에는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했다. 당시 지배계급은 노조를 임금 인상은 물론 음모와 소요의 근원지라 여겼다. 노조를 불온시한 영국 정부는 1793년 로즈법을 제정하여 호전적인 조합원과 온건한 노동자를 분리시키기 위해 공제조합의 등록을 의무화하고, 그 활동을 규제하였다. 1799년에는 단결금지법을 만들어 모든 노조를 불법화(임금 인상을 위해 조직을 결성하면 3개월 금고형이나 2개월 중노동 형에 처함)했다.
이와 같이 노조가 불법화되고, 공제조합이 합법화되자 공제조합의 수가 크게 늘어났으며(수천 개로 늘어났지만 정확한 수가 파악된 적은 없었다.), 공제조합은 조합원들의 복지활동(소득의 중단이나 상실에는 대비하는)에 주력했다. 공제 조합의 성격도 다양했다. 노동자들의 장래를 보장하기 위한 것도 있었고, 과부나 자녀, 질별이나 노후에 대비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저축을 목적으로 하거나(주민은행의 효시), 특별한 일(크리스마스 등)에 대비하기 위한 것도 있었으며, 거의 대부분의 남자만의 조직이었다.
독일에서도 17세기경부터 직인과 도제 및 광부의 상호부조조직이 전국 각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1845년 프로이센은 영업법을 제정하여 독일 최초로 공제조합, 즉 노동자들의 생계와 건강을 위한 상호부조조직을 합법화하였다. 이로써 공장 노동자는 공제조합에서 가입할 수 있게 되었고, 지역별로 공제조합을 설립하여 공장노동자의 가입을 의무화할 수 있게 되었으며, 노동자가 부담하는 공제조합의 갹출료의 절반까지 공용주가 부담하는 것을 의무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직업별 · 공장별 · 지역별로 결성된 공제조합들은 통 · 폐합을 거듭했으며, 우후죽순처럼 생긴 건강보험조합과 직장 · 지역· 수공업자 조합이 공존하였다. 독일이 세계최초로 사회보험을 만든 후 그 시행이 비교적으로 순조로웠던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지역별 · 직능별 공제조합이 잘 조직되어 있었다는 데 있다.
프랑스에서도 19세기에 공제조합이 상당히 발달했다. 프랑스의 공제조합도 영국이나 독일같이 동일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예컨대 목수, 미장이, 제화공, 방직 및 방적공 등이 직업 연대성에 기초하여 자생적으로 결성하였다. 프랑스 정부는 노동자조합은 물론 공제조합까지도 형법상의 집회금지조항의 적용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1848년 제2공화국의 성립 이후 조직이 허용되어 1850년에는 약 2천 개로 늘어났고, 19세기 후반기에는 노동자 또는 가족의 생활안정보장의 주된 수단으로 성장하였다. 1889년에는 공제조합현장에 공포되어 공제조합이 결성의 촉매제가 되었다.
한편 프랑스는 특이하게도 국가가 직접 공제조합을 만들어 노동자와 가족의 생활안정대책을 강구하였다. 1850년에 설립된 국가 노령퇴직 금고가 그것이다. 이 금고는 국가의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여타의 저축보다도 많은 이윤을 보장함으로써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후에 대비한 예방적 노력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노후에 대비한 예방적 노력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무관심과 높은 수준의 이자수입을 노린 중산층의 대폭적 참여 때문에 본래의 목적에서 빗나간 제도로 변질하였다.
공제조합과 국가 노령퇴직 금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퇴직과 산업재해 등과 같은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기는 여전히 미흡했다. 이런 상황에서 19세기 후반이 되자 기업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을 위해 만든 고용주 금고가 등장했다. 고용주 금고는 기업체 내에 금고를 설치하여 피고용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또는 퇴직에 대해 보상금을 자급했는데. 그 재원은 노동자와 사용주의 기여금으로 충당하였다. 고용주 금고는 주로 산업재해가 빈번한 광산과 탄광업체(산업재해를 위한 고용주 금고), 숙련된 일손의 확보에 부심하였던 주물공장과 농촌의 노동인력을 끌어모아 선로의 정규적인 감독과 서비스에 종사시켜야 했던 철도회사(퇴직에 대비한 고용주 금고)가 만들었다.
그러나 공제조합이나 고용주 금고는 그 혜택 범위가 한정되어 대부분 노동자는 여전히 질병, 산업재해, 실업, 퇴직 등의 사회적 위험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노사간의 계급대립이 심화하고 노동자계급의 생활 처지 개선 요구가 강해지자 노동자복지에 대한 국가의 관심이 증대되었다. 그와 함께 종전까지는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었던 노동자들의 공제조합들을 국가가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권장하기 시작했다. (1895년 공제조합 자율화의 법, 1895년 공제조합현장 : 국민연금연구센터, 1997 : 36-37)
공제조합은 노동자들의 복지문제에 국가가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전까지 노동자들의 재해, 질병, 노령 사망 등 사회적 위험을 당호 부조를 통해 스스로 해결하고자 했던 자조조직이었다. 그러나 조합원의 범위가 좋고 비조합원에 대해 배타적이었으며, 재정규모가 영세한 공제조합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엄청나게 커진 사회적 위 (대량 실업, 산업재해, 직업병 등)에 대응하긴 역부족이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국가의 사회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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