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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상과 사회복지정책(5)

사회복지정책론

by 헬페인 2020. 1. 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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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르크스주의



  마르스크가 활동할 무렵인 19세기 중 · 후반에는 근대적인 사회복지정책(1880년대 독일의 비스마르크 사회입법)이 등장하기 전이었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마르크스의 정확한 입장의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체제와 자본주의국가에 관한 마르크스의 견해로부터 유추해 낼 수는 있다. 주지하듯이 그에게 자본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지양되어야 할 착취체제였으며, 자본주의국가는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해를 수호하기 위한 위원회에 불과헀다.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 행하는 일체의 활동은 사회주의 혁명에 이로울 리가 없다. 사회복지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이 말은 사회복지정책이 비록 노동자계급이나 빈민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부르주아 국가 시행하는 한 구조적으로 부르주아지의 계급이해에 반하는 것이 될 수 없고,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이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추론은 마르크스와 사상적 동일체라 할 수 있는 엥겔스가 살아있었을 때 그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은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부가 비스마르크 사회입법에 대해 취한 입장을 통해 확인된다.


  1880년대에 도입된 일련의 사회입법에 대해 당시 독일의 사회민주당 지도부는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사회보험은 '원칙적으로' 찬성한다고 하면서도 비스마르크의 사회보험은 그 내용이 노동자에 대한 동냥에 불과할 정도로 워낙 조악하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들은 비스마르크 사회보험을 노동자를 올바른 길에서 이탈시키려는 지배계급의 수술(비스마르크 사회보험을 '미끼'로 간주) 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성을 무력화시키려는 전술적 책략으로 간주했으며, 자신들의 임무는 바로 이런 음모를 폭로하는 데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무조건적으로 사회복지정책을 거부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당시 무조건적으로 사회보험을 반대했다면 상당수의 노동 대중으로부터 사민당의 외면당했을 것이다) 그들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개량주의적 사회복지정책은 단호히 반대했지만, 노동자계급이 자주적으로 얻어내고 또 내용적으로 진보적인 사회복지정책은 분명히 요구하였다. 예컨대, 1891년의 에어푸르트강령에서 그들은 완전 무료의 의료 및 노동자 참여하여 경정권을 갖는 사회보험과 그에 대한 연방에 관한 권과 같은 사회복지정책의 개혁을 요구한 바 있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사회보험에 대한 노동자들의 재정부담을 특히 반대하면서 국가와 자본가계급만의 부담을 요구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데 있었다.


  첫째, 노동자의 임금은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보험료를 부담할 능력이 없다. 둘째, 노동자 생계의 불안정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자본가의 이익에 봉사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잘못에 기인하기 때문에 노동자는 보험료를 낼 필요가 없다. 셋째, 재정이 노동자의 임금에서 충당되어야 한다면 급여의 수준은 결코 충분할 수가 없다. 넷째, 사용자의 부담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본주의는 빨리 붕괴할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사회복지정책을 이렇게 냉소적으로 보는 입장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유럽과 미국의 공산주의자들에게 공통적이었다. 예컨대, 1910년대 미국의 사회보험 도입을 높고 벌어진 논쟁에서 노동운동 좌파는 사회보험이 노동자계급의 전투성을 약화시킨다고 해서 그 도입을 반대했고, 1911년 영국 자유당 정부의 국민보험에 대하여 사회주의 좌파는 위로부터의 개혁인 권위주의적 복지주의일 따름이라고 부정했으며, 1935년 미국의 루스벨트 사회보장법에 대해 사회주의 좌파는 사회주의 혁명을 성취할 수 있었던 황금 같은 기회를 무산시키는 자본가들의 책략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당시까지도 마르크스를 신봉한 사회주의자들은 여전히 사회주의혁명의 가능성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복지정책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의식을 약화시키는 해독제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날로 보면 사회복지정책의 대상자들에 속할 계급이나 집단에 대한 마르크스의 태도를 통해서도 마르크스의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관념을 엿볼 수 있다.


  사회보험의 핵심 대상자인 노동자계급에 대한 마르크스의 의견은 너무나 잘 알려졌듯이 매우 긍정적이다. 마르크스에 있어 프롤레타이트는 사회적 생산의 체계에서 핵심적 위치를 점하며, 기초적인 사회적 부의 생산자이다. 또한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계급 이로써 사적 소유의 폐절과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어 낸 역사적 사명을 가진 존재하였다.


  반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과정에 진입하지 못한 과잉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으로서 부랑자, 범죄자, 매춘부로 구성된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를 프롤레타리아트와 구별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룸펜 르롤레타이트란 구체제(봉건체제)의 최하층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수동적으로 부패하는 대중으로서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본질의 증거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사회적인 노동으로부터 밀려나온 '부랑자들'을 끊임없이 창출한다. 이들은 자신의 아주 낮은 사회적 지위 때문에 착취체제 및 억압계급에 대해 적개심을 느끼지만, 사회 전체에 대한 적개심이 더 전형적이다. 이들은 세계 문화의 업적들을 존중하지 않으며, 이들의 이상은 원시적인 재분배와 저급한 평균주의적 사이비 공산주의를 넘지 못한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생산체제 안에서의 위치 때문에 훈련되고 조직되는 계급이지만,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는 비조직적일 수밖에 없으며, 사회의 반동적 선동에 쉽게 반응하고 영합한, 따라서 반란과정에서 무모한 행동을 일삼는다. 이들의 폭동은 혁명적 방식으로 전개되지도 않을 뿐더러 역사적인전망도 없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쉽게 휩쓸리지만 혁명운동을 분쇄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반동적인 음모에 매수되어 이용당하기가 훨씬 쉽다.


  실제로 이들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는 19세기 유럽에서 발발했던 여러 혁명에서 힘 있는 자를 위해 너무나도 쉽게 자신들을 팔아버렸다. 지배계급에 매수된 이들은 혁명대열에서 이탈하여 지배층의 저택을 지키거나, 혁명군의 바리케이드를 파괴하거나, 혁명이실패로 끈나 후 혁명군ㅇ르 밀고하거나 하는 비열한 행위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반혁명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것이다. 엥겔스는 이들을 사회의 찌꺼기라 블렀다. 자본주의 사회의 계속되는 실업과 그로 인한 생존 압박은 언제든지 노동자 계급으로 부터 이탈하여 지배 계급의 타락한 앞잡이가 되는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를 만들었다. 


  마르크스는 또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민구제 대상인 극빈층을 구별했다. 이들은 "현역 노동자 군의 병원이며 산업예비군의 주검 무더기이다." 마르크스는 이들을 노동자 계급의 최하 침전층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노동자계급 중 생존조건(노동력의 판매)을 상실해 국가의 구호품으로 연명하는 층이라고 규정했다. 전술한 룸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의 존립을 위해 필요한 하나의 조건이라면 이들 극빈층은 자본주의의 조건이 아니라 그 결과, 즉 하나의 불량품으로 전락한 층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마르크스는 그의 생전에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던 이른바 사회개량주의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는 '박애주의자, 인도주의자, 노동자계급 처지 개선론자, 자선자업가 등 잡다하기 그지없는 좀스러운 개혁가' 부르주아 사회주의자라 불렸고, 이들은 부르주아 사회의 존립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적 폐해를 제거하고자 할 뿐이라고 했다. 즉, "물질적 생활 상태의 변화를 오직 혁명적 방식으로만 가능한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들의 철폐로 이해하지 않고, 생산관계들의 토양 위에서 행해지는, 따라서 자본과 임금 노동의 관계는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기껏해야 부르주아지의 지배 비용을 감소시키고 그들의 국가 운영을 간소화시킬 뿐인 행정적 개선으로만 이해"하는 보수적 사회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국가의 사회복지정책에 대해서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본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19세기 중반에 있었던 영국 녿오자 계급의 노동시간 단축투쟁, 즉 공장법 투쟁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마르크스는 그의 대표작 『자본론』에서 공장법에 대해서 상당 부분 할애하여 기술했는데(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부분에서), 공장법을 "생산과정의 자연 발생적 모습에 대한 최초의 의식적이며 계회적인 사회적 반작용"으로서 "자본의 착취권에 대한 간섭"이자 "자본에게서 쟁취한 최소의 빈약한 양보"라고 했다. 그에 있어 공장법은 노동자계급이 치열한 계급투쟁을 통해 자본의 논리를 굴복시키고 얻어낸 양보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계급운동의 최종 목표를 개량에 둔 라살레주의적 사회복지정책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에서 보면 노동자들의 반자본주의적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이데올로기적 ·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지만,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지향하는 계급투쟁에 의해 양보 된 사회복지정책은 개량주의적 인 것 아니다. 노동자계급은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경제투쟁(개량투쟁 : 필자)을 통하여 이미 만들어 낸 개개인의 힘을 통일시킴으로써 그것을 착취자의 정치적 권력에 대한 그들의 투쟁에서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마르크스가 사회주의를 분배의 문제에 국한 시킨 라살레주의자들을 비판한 글에서 근대적인 사회복지정책과 전근대적인 구빈정책을 구분했고, 또 그 기능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는데, 이를 통해 그의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이론적 입장을 다소나마 확인할 수 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노동 소득을 노동의 샌상물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때 집단적 노동소득은 사회의 총생산 물이 된다. 총 생산물 중 개인에게 분배되기 전에 자본의 필요에 의해 일차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공제된다.


  첫째, 소비된 생산수단을 보충하는 데 필요한 부분, 둘째 생산을 확장하기 위하여 추가될 부분, 셋째 불의의 사고나 자연재해 등에 대비한 예비금 또는 보험금이다.



   생산과는 직접 관계없는 일반 관리비 :   이 부분은 요즘 사회와 비교하면 곧바로 아주 뚜렷        하게 한정될 것이며, 새로운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더욱더 줄어들 것이다.


   학교나 보건시설 등과 같은 수요를 공동으로 충족시키는 데 쓰이는 부분 : 이 부분은 요즘 

      사회와 비교하면 곧바로 뚜렷이 증가될 것이며, 새로운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더욱더 늘어          날것이다.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 등을 위한 기금 : 요컨대, 공공비민구호에 해당되는 기금



 개인에게 분배되기 전에 공동으로 사용되는 소비재란 사회적 소비재를 의미한다. 이는 비용은 사횢거 소비, 즉 노동력 재생산비용의 감소를 위한 지출에, 세 번째의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을 위한 기금은 사회적 지출, 즉 사회적 조화의 유지 및 정당화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지출에 각각 대응된다. 오늘날 사회적 소비의 예로는 국가의 보건의료정책과 교육정책을 들 수 있고, 사회적 지출의 예로는 공공부조를 들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이 모든 것을 공제한 후에야 비로소 개인들을 위한 '분배'에 이르게 됨에도 라살레주의자들은 편협하게도 분배를 생산양식으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이 분배에만, 다시 말해서. 집단 내의 생산자 개개인에게 분배되는 '소비재 부분'에만 관심을 두었으며, 따라서 사회주의는 주로 분배문제에 중점을 두는 것처럼 왜곡했다고 격렬히 비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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